2022년 9월, 현대중공업그룹은 팔란티어의 기업용 플랫폼 ’파운드리’를 조선 계열사 전체에 들이는 본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든 공정을 데이터로 연결해 조선소의 디지털 복제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요즘 팔란티어라는 이름은 주식 이야기에서 더 자주 들리지만, “그래서 무엇을 파는 회사냐”고 물으면 선뜻 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주가 이야기는 잠시 빼고, 이 회사가 누구에게 무엇을 팔아 돈을 버는지부터 정리합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따온 이름, 9·11 이후의 창업

팔란티어는 2003년 미국 팰로앨토에서 세워졌습니다. 공동 창업자는 페이팔을 함께 만든 투자자 피터 틸, 지금의 최고경영자(CEO) 알렉스 카프, 그리고 조 론즈데일, 스티븐 코언, 네이선 게팅스입니다. 출발점은 9·11 테러 이후의 질문이었습니다. 페이팔이 수상한 결제를 걸러 내던 기술로, 여러 기관에 흩어진 정보에서 테러 조직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회사 이름은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팔란티르’에서 왔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의 일을 들여다보는 수정구 같은 돌입니다. 소설에서 이 돌은 악당 사우론이 상대를 속이고 조종하는 데도 쓰였기 때문에, 감시 기술의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라는 지적이 늘 따라다닙니다. 팔란티어는 사무실 이름까지 샤이어, 리븐델 같은 톨킨 작품 속 지명에서 따왔습니다.

초기 자금은 대부분 틸과 그의 펀드가 댔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세운 벤처 투자사 인큐텔(In-Q-Tel)이 약 200만 달러를 넣었습니다. 첫 고객이 정보기관이었던 이유입니다.

CEO 카프는 개발자 출신이 아닙니다. 스탠퍼드 로스쿨에서 틸을 만났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에서 사회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코드를 짜지 못하는 철학 박사가 20년 넘게 소프트웨어 회사를 이끌어 온 셈입니다.

회사가 주식시장에 나온 것은 창업 17년 만인 2020년 9월 30일입니다. 새 주식을 찍어 팔지 않고 기존 주주의 주식을 곧바로 거래소에 올리는 ‘직상장’ 방식으로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첫 거래 가격은 10달러였습니다.

흑자는 그보다 늦었습니다. 창업 뒤 해마다 적자를 내다가 2023년에야 처음으로 연간 순이익 2억 1,000만 달러를 냈고, 2024년 9월 S&P 500 지수에 편입됐습니다. 같은 해 11월 상장 시장을 나스닥으로 옮겼고, 본사는 팰로앨토에서 덴버(2020년)를 거쳐 2026년 2월 마이애미로 옮겼습니다.

무엇을 파는가: 데이터가 아니라 ‘회사의 관제실’

팔란티어를 개인정보를 모아 파는 데이터 회사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팔란티어가 파는 것은 소프트웨어입니다. 고객이 이미 가진 데이터를 한곳에 연결하고, 그 위에서 분석하고, 결정한 내용을 실제 업무 시스템에 반영하게 해 주는 플랫폼입니다.

팔란티어는 고객 데이터를 자기 목적으로 다시 쓰거나 남에게 넘기지 않는다고 밝힙니다. 다만 고객이 그 소프트웨어로 무엇을 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고, 이 논쟁은 팔란티어 열풍을 다룬 글에서 따로 다룹니다.

비유하자면 팔란티어는 큰 건물의 관제실을 만들어 주는 회사에 가깝습니다. 관제실이 없는 건물에서는 전력, 출입 기록, CCTV, 승강기 고장 신고를 각자 다른 사람이 따로 봅니다. 불이 나면 관리인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야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관제실이 있으면 한 화면에서 어느 층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보고, 그 자리에서 방화문을 닫고 담당자를 부릅니다. 팔란티어는 이런 관제실을 공장, 병원, 군대, 정부 기관 단위로 만들어 줍니다.

작은 회사로 옮겨 보겠습니다. 직원 40명인 부품 가공 공장이라면 수주 내역은 ERP에, 자재 재고는 구매 담당자의 엑셀에, 설비 가동 기록은 현장의 종이 일지에, 납기 조율은 거래처와의 단톡방에 있습니다. “급하게 들어온 주문을 어느 설비에 끼워 넣을까”라는 결정 하나에 네 군데를 뒤져야 합니다. 팔란티어가 대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해 온 일은 이 네 군데를 하나의 화면과 하나의 규칙으로 묶고, 화면에서 결정을 실행하면 생산 계획과 납기 안내까지 함께 바뀌게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을 파는가: 데이터가 아니라 '회사의 관제실' 관련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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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란티어는 연차 보고서(10-K)에서 자사를 “조직이 데이터, 결정, 운영을 대규모로 통합하게 돕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로 설명합니다. 눈여겨볼 단어는 ’결정’과 ’운영’입니다. 데이터를 그래프로 보여 주는 도구는 이미 많습니다. 팔란티어가 비싼 값을 받는 근거는 분석에서 멈추지 않고 실행까지 이어 준다는 데 있습니다.

네 가지 제품: 고담, 파운드리, 아폴로, AIP

팔란티어가 2025년 연차 보고서에서 밝힌 핵심 플랫폼은 네 가지입니다.

제품 주로 쓰는 곳 하는 일 쉬운 비유
고담(Gotham) 국방·정보기관·정부 센서, 위성, 첩보 등 여러 영역의 데이터를 거의 실시간으로 합쳐 작전 판단을 돕는다 작전 상황실
파운드리(Foundry) 기업, 일부 정부 기관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하고 분석 화면과 업무 앱을 만드는 ‘중앙 운영체제’ 회사 관제실
아폴로(Apollo) 팔란티어 자체와 고객 클라우드, 사내 서버, 야전 장비 어디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업데이트한다 전국 배송망
AIP 기업과 정부 대규모 언어 모델(LLM, 챗GPT 같은 생성형 AI의 엔진)을 회사 데이터와 업무에 안전하게 연결한다 관제실에 배치된 AI 직원

고담은 팔란티어의 출발점입니다. 분석가가 여러 데이터베이스를 하나씩 따로 검색하던 일을 한 화면으로 묶었고, 지금은 전장의 센서 데이터까지 합쳐 지휘관의 판단을 돕는 쪽으로 넓어졌습니다. 파운드리는 이 경험을 기업용으로 옮긴 제품입니다. 팔란티어에 따르면 상업 고객은 모두 파운드리를 씁니다.

아폴로는 눈에 덜 띄지만 사업을 떠받치는 제품입니다. 팔란티어의 고객 중에는 인터넷이 끊긴 군 기지나 보안 때문에 외부망과 분리된 서버를 쓰는 곳이 많습니다. 아폴로는 그런 곳에서도 새 기능과 보안 패치를 매일 배포할 수 있게 관리합니다.

AIP는 2023년에 내놓은 가장 새로운 제품으로, 외부 AI 모델을 회사의 데이터와 권한 체계 안에서 쓰게 해 줍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매출이 가파르게 늘어난 배경으로 AIP가 자주 꼽힙니다.

네 제품 밑에는 ’온톨로지’라는 공통 기반이 깔려 있습니다. 회사의 데이터를 주문, 거래처, 설비 같은 현실의 대상과 그 관계로 정리한 일종의 지도입니다. 팔란티어는 연차 보고서에서 이를 “플랫폼의 심장”이라고 부릅니다. 개념이 낯설고 설명할 거리가 많아 온톨로지만 따로 다룬 글로 나눴습니다.

누가 사는가: 정부 절반, 기업 절반

2025년 팔란티어의 매출은 44억 7,500만 달러였습니다(2025년 연차 보고서 기준). 이 가운데 54%가 정부, 46%가 기업에서 나왔고, 지역으로는 74%가 미국이었습니다. 2025년 말 고객 수는 954곳, 정규직 직원은 4,429명입니다. 고객이 수만 곳에 이르는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회사와는 거리가 멉니다. 대신 상위 20개 고객 한 곳에서 거둔 평균 연매출이 9,390만 달러일 만큼 고객 한 곳과의 거래가 큽니다.

정부 쪽 대표 고객은 미국 국방부와 정보기관입니다. 2025년 7월 미 육군은 흩어져 있던 계약 75건을 하나로 묶어 팔란티어와 최대 10년, 상한 100억 달러의 기업 계약을 맺었습니다. 100억 달러는 살 수 있는 한도일 뿐 확정된 구매액은 아니라고 육군은 밝혔습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의료 데이터 플랫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사건 관리 시스템도 팔란티어가 맡고 있습니다.

기업 고객의 업종은 제조, 에너지, 제약, 금융, 유통 등으로 다양합니다. 연차 보고서는 사용자 예시로 전력 회사의 운영 분석가, 자동차 공장 작업자, 석유·가스 현장 기술자, 제약 연구원과 함께 “한국의 공급망 관리자”를 적어 두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앞서 말한 현대중공업그룹(현 HD현대)이 2022년 조선 계열사 전체에 파운드리를 도입했고, DL이앤씨가 같은 해 건설업계에서 처음으로 팔란티어와 데이터 경영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KT는 2025년 3월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팔란티어의 파트너 네트워크(월드와이드 파트너 에코시스템)에 합류했습니다.

누가 사는가: 정부 절반, 기업 절반 관련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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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들어 매출과 고객 수는 이보다 훨씬 빠르게 늘었습니다. 가장 최근 분기 실적과 주가, 시가총액은 날마다 바뀌는 숫자가 많아 연재의 다음 팔란티어 글에 모았습니다.

팔란티어식 영업: 가장 어려운 문제부터, 엔지니어는 현장으로

팔란티어의 사업 방식은 보통의 소프트웨어 회사와 반대에 가깝습니다. 보통은 쉽게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 많은 고객에게 넓게 팝니다. 팔란티어는 연차 보고서에 “크고 실행하기 어려운 기회”를 겨냥한다고 적었습니다. 설치 비용이 크고 실패 위험이 높고 영업 기간이 긴 일일수록 경쟁자가 적다는 계산입니다.

이 방식을 떠받치는 사람이 ’현장 배치 엔지니어(FDE, Forward Deployed Engineer)’입니다. 팔란티어 개발자가 고객사에 들어가 현업 담당자 옆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이미 만들어 둔 플랫폼 기능을 조합해 해결책을 구현합니다. 팔란티어 블로그는 일반 개발자가 “여러 고객이 쓸 기능 하나”를 만든다면 FDE는 “한 고객을 위한 여러 기능”을 엮는다고 설명합니다. 현장에서 만든 해결책 가운데 다른 고객에게도 쓸모 있는 것은 다시 제품에 반영됩니다.

상장 무렵의 사업 모델은 ‘획득, 확장, 규모화’ 3단계였습니다. 처음에는 무료나 낮은 가격으로 시범 도입(파일럿)을 하고, 효과가 확인되면 쓰는 부서와 업무를 넓히고, 마지막에 조직 전체로 키웁니다. 2020 회계연도 연차 보고서에는 영업 기간이 보통 6~9개월, 길면 1년 이상 걸린다고 적혀 있습니다. 비용은 앞단에 몰리고 매출은 몇 년에 걸쳐 들어오는 구조라 상장 뒤에도 한동안 적자가 이어졌습니다.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도 있었습니다. 2016년 팔란티어는 미 육군이 정보 분석 시스템을 발주하면서 시장에 이미 나와 있는 상용 제품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며 연방청구법원에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육군이 1994년 제정된 연방조달간소화법을 어겼다며 팔란티어의 손을 들어 줬습니다. 정부가 직접 개발하던 영역에 기성 소프트웨어를 팔겠다는 팔란티어의 태도가 잘 드러난 사건입니다.

팔란티어식 제안을 받았을 때 확인할 여섯 가지

팔란티어의 방식을 참고해 사내 데이터를 통합하려는 회사라면, 팔란티어든 국내 업체든 제안서를 받았을 때 다음 여섯 가지를 물어보면 좋습니다. 모두 팔란티어가 스스로 강점으로 내세우는 지점이라, 비슷한 방식을 표방하는 제안이라면 답이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1. 첫 결과물을 우리 실제 데이터로 몇 주 안에 볼 수 있는가. 샘플 데이터로 보여 주는 시연과 우리 회사 데이터로 돌아가는 화면은 전혀 다릅니다.
  2. 현장 담당자 옆에서 만들 사람은 누구인가. 요구 사항을 듣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다르면, 전달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가 빠질 수 있습니다.
  3. 화면으로 보여 주는 데서 끝나는가, 결정을 ERP·엑셀·발주 시스템에 반영하는 데까지 가는가. 보고서만 늘어나는 도입인지 일하는 방식이 바뀌는 도입인지가 여기서 갈립니다.
  4. 누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권한을 어떻게 나누는가. “영업팀이 원가를 봐도 되는가” 같은 질문에 설정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5. 우리 데이터는 어디에 복사되고, 계약이 끝나면 어떤 형식으로 돌려받는가. 나중에 다른 도구로 옮길 수 있는지가 협상력을 좌우합니다.
  6. 1년 총비용은 얼마인가. 엔지니어가 상주하는 방식이라면 소프트웨어 사용료와 인력비를 나눠서 받아 보세요.

팔란티어가 20년 넘게 보여 준 것은 데이터를 모으는 일보다 그 데이터로 매일의 결정을 바꾸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쉬운 제품 대신 어려운 현장을 골랐고, 엔지니어를 고객 옆에 앉혔습니다. 작은 회사가 팔란티어의 제품을 도입할 일은 드물지만, 가장 값비싼 결정 하나를 골라 거기에 필요한 데이터부터 연결하는 순서는 그대로 빌려 올 수 있습니다.

무엇부터 연결하고 자동화할지 고르는 기준은 무엇부터 자동화할까에 정리했습니다.

참고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