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회의에서 대표가 말합니다. “요즘 AI로 다 자동화한다던데, 팀마다 하나씩 가져와 보세요.” 일주일 뒤 올라온 목록은 이렇습니다. 영업팀은 거래처 가격 협상 메일, 관리팀은 연말정산 자료 정리, 물류팀은 매일 아침 재고 엑셀 세 개 합치기를 가져왔습니다.
팀마다 가장 괴로운 일을 골라 왔지만, 첫 자동화로 가장 알맞은 것은 셋 중 가장 지루해 보이는 물류팀의 일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이유는 기준 다섯 가지와 간단한 계산 하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장 괴로운 일이 첫 후보가 아닌 이유
일이 괴로운 이유는 대개 양이 아니라 판단과 조율입니다. 가격 협상 메일이 힘든 것은 글자 수 때문이 아니라, 상대의 반응을 읽고 관계를 계산하고 어디까지 양보할지 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자동화하기 가장 어렵고, 잘못됐을 때 수습하기도 가장 어렵습니다. 반대로 지루해서 미루던 집계 작업은 기계에 맡기기 쉽고, 틀려도 다시 돌리면 됩니다.
맥킨지는 2016년 미국의 직업을 개별 활동 단위로 쪼개, 당시 기술로 자동화할 수 있는 시간의 비율을 추정했습니다.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하는 육체 작업은 78%, 데이터 처리는 69%, 데이터 수집은 64%였습니다. 반면 고객·거래처 같은 이해관계자를 상대하는 일은 20%, 전문 지식을 판단·기획·창작에 쓰는 일은 18%, 사람을 관리하고 키우는 일은 9%에 그쳤습니다. 같은 분석에서 미국 직장인은 근무 시간의 3분의 1을 데이터를 모으고 처리하는 데 쓰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생성형 AI가 나오기 전의 추정이라, 지금 다시 계산하면 문서 작성 같은 일의 숫자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래도 첫 후보를 고를 때의 출발점으로는 여전히 쓸 만합니다. 자료를 모으고, 옮겨 적고, 합치고, 대조하는 일에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순서를 잘못 잡으면 돈과 신뢰를 함께 잃습니다. 2025년 국내 학술지에 실린 한 연구(이상용 외)는 RPA(사람이 PC에서 하던 클릭과 입력을 소프트웨어 로봇이 대신하게 하는 기술) 과제를 잘못 고르면 투자비를 회수하기도 전에 과제가 중단되는 낭비가 생긴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첫 자동화가 실패하면 다음 후보를 켜자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워집니다.
후보를 거르는 다섯 가지 질문
자동화 후보를 고르는 기준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꽤 비슷하게 정리돼 있습니다. 독일 연구진(Wanner 외)은 2019년 국제정보시스템학술대회(ICIS)에서 기존 연구와 전문가 의견을 모아 RPA에 맞는 업무의 조건으로 실행 빈도, 안정성(예외가 드문가), 규칙 기반 여부, 표준화 정도를 꼽았고, 자주 다시 해야 하는 일, 즉 오류가 잦은 일도 후보로 봤습니다. 앞의 국내 연구는 한 하이테크 제조 대기업의 실제 RPA 프로젝트 데이터를 통계로 분석해 과제 선정에 의미 있는 요소 7개를 확인했습니다. 한국 중소기업 실무에 맞게 다섯 가지 질문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얼마나 자주 하는가. 매일 들어오는 발주서 입력과 1년에 한 번 하는 연말정산 자료 정리는 같은 한 시간이라도 무게가 다릅니다. 드물게 하는 일은 자동화를 만들어도 다음 차례가 올 때쯤 양식이나 사이트 화면이 바뀌어 있어서, 아낀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더 들기 쉽습니다.
모두 합쳐 얼마나 오래 걸리는가. 1회 소요 시간에 횟수와 사람 수를 곱해야 합니다. 5분짜리 확인 작업이라도 10명이 하루 세 번씩 하면 하루 150분, 연 250일 근무 기준으로 한 해 625시간입니다. 한 사람의 일로 보면 사소해 보이는 일이 회사 전체로는 가장 큰 칸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규칙을 문장으로 쓸 수 있는가. “50만 원 이하 소모품 구매는 팀장 승인 없이 처리한다”는 규칙은 기계가 따를 수 있습니다. “거래처 분위기를 봐서 할인 폭을 정한다”는 따를 수 없습니다. 담당자에게 규칙을 적어 달라고 한 뒤 ‘보통은’, ‘상황 봐서’, ‘그때그때’ 같은 말이 몇 번 나오는지 세어 보면 규칙성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재료가 같은 모양으로 들어오는가. 모든 거래처가 같은 이메일 양식으로 발주를 보내면 자동화가 쉽습니다. 어떤 곳은 카톡 사진, 어떤 곳은 전화, 어떤 곳은 손글씨 팩스라면 자동화보다 입력 경로를 모으는 일이 먼저입니다. 양식만 통일해도 자동화 없이 일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틀리면 얼마나 비싼가. 이 질문은 양쪽으로 작동합니다. 사람이 자주 틀리고 틀리면 비싼 일, 예를 들어 단가를 옮겨 적거나 재고 수량을 다시 입력하는 일은 좋은 후보입니다. 반대로 자동화가 틀렸을 때 되돌릴 수 없는 일, 예를 들어 대금 이체나 고객 수백 명에게 가는 안내 문자는 자동화하더라도 마지막에 사람이 확인하는 단계를 남겨야 합니다.
계산해 보기: 그만한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나
개발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웹코믹 xkcd에 「Is It Worth the Time?」(2013)이라는 표가 있습니다. 반복하는 일을 줄이는 데 시간을 얼마까지 써도 5년 안에 본전을 뽑는지 보여 줍니다. 계산은 간단합니다.
들여도 되는 시간의 상한 = 5년 × 1년에 하는 횟수 × 1회에 줄이는 시간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일에서 1분을 줄이면 5년 동안 260분, 약 4시간 20분을 아낍니다. 그 1분을 줄이는 데 4시간 넘게 쓰면 손해라는 뜻입니다. 앞의 회사 목록에 대입하면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 업무 | 빈도 | 1회 절감 | 5년 누적 절감 |
|---|---|---|---|
| 아침 재고 엑셀 3개 합치기 | 매일(연 250일) | 30분 | 625시간 |
| 주간 매출 보고서 작성 | 주 1회 | 1시간 | 260시간 |
| 월말 출장비 정산 검토 | 월 20건 | 건당 15분 | 300시간 |
| 연말정산 자료 정리 | 연 1회 | 8시간 | 40시간 |
연말정산 자료 정리는 한 번에 여덟 시간이 걸려 가장 괴로운 일처럼 보이지만, 5년 동안 아낄 수 있는 시간은 40시간입니다. 이걸 위해 맞춤 자동화를 만드는 것은 손해이고, 이미 있는 서비스나 외부 대행으로 푸는 편이 낫습니다. 반면 재고 합치기는 한 번에 30분짜리지만 5년이면 625시간, 한 사람의 넉 달 치 근무 시간에 가깝습니다.
이 표를 쓸 때 세 가지를 보정해야 합니다. 첫째, 같은 일을 여러 사람이 하면 사람 수를 곱합니다. 둘째, 만드는 시간만 비용이 아닙니다. xkcd는 몇 달 뒤 「Automation」(2014)이라는 그림을 다시 그렸는데, ’이론’에서는 코드를 짜고 나면 자유 시간이 생기지만 ’현실’에서는 디버깅과 재설계가 끝없이 이어지고 원래 일은 그대로 남습니다. 거래처 양식이나 사이트 화면이 바뀔 때마다 고치는 시간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셋째, 작은 회사는 5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일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보수적으로 1~2년 기준으로 다시 계산해도 남는 일부터 고르십시오.
점수표로 후보 줄 세우기
계산으로 걸러 낸 후보들은 점수표로 순서를 정합니다. 점수를 매기기 전에 세 가지 관문부터 확인합니다.
- 관문 1. 결과물을 누가 쓰는가. 아무도 읽지 않는 보고서라면 자동화할 것이 아니라 없앨 일입니다.
- 관문 2. 사람마다 하는 방식이 같은가. 다르면 자동화 전에 표준 절차부터 정합니다.
- 관문 3. 틀렸을 때 되돌릴 수 있는가. 없다면 자동화하더라도 마지막에 사람 승인 단계를 둡니다.
관문을 통과한 후보는 다섯 가지 질문을 각각 1~3점으로 매깁니다.
| 기준 | 1점 | 2점 | 3점 |
|---|---|---|---|
| 빈도 | 분기 1회 이하 | 주 1회~월 몇 회 | 매일 또는 주 여러 번 |
| 1회 소요 시간(관련 인원 합계) | 10분 미만 | 10~30분 | 30분 이상 |
| 규칙성 | 매번 사람 판단 | 규칙은 있으나 예외가 잦음 | 규칙과 예외를 문장으로 쓸 수 있음 |
| 입력 표준화 | 카톡 사진, 전화, 손글씨 | 양식은 있으나 제각각 | 같은 양식, 같은 경로 |
| 사람 실수의 비용 | 틀려도 영향 적음 | 가끔 재작업 | 자주 틀리고 수습 비용이 큼 |
회사 업무 여섯 개를 넣어 보면 이렇게 갈립니다.
| 업무 | 빈도 | 시간 | 규칙 | 입력 | 실수 비용 | 합계 | 판단 |
|---|---|---|---|---|---|---|---|
| 아침 재고 엑셀 합치기 | 3 | 3 | 3 | 2 | 2 | 13 | 1순위 |
| 거래처 발주서 ERP 입력 | 3 | 2 | 3 | 1 | 3 | 12 | 발주 경로를 이메일 양식으로 모은 뒤 시작 |
| 거래처 대금 이체 | 2 | 1 | 3 | 3 | 3 | 12 | 관문 3: 이체 직전 사람 승인 |
| 월말 출장비 정산 검토 | 2 | 2 | 2 | 2 | 2 | 10 | 정산 규정부터 문장으로 정리 |
| 연말정산 자료 정리 | 1 | 3 | 2 | 2 | 2 | 10 | 5년 절감 40시간, 직접 개발은 손해 |
| 거래처 가격 협상 메일 | 2 | 2 | 1 | 1 | 2 | 8 | 자동화 대신 AI로 초안만 |
점수는 판단을 돕는 도구일 뿐 정답이 아닙니다. 점수가 비슷하면 효과를 재기 쉬운 쪽을 고르십시오. 처리 시간이나 오류 건수를 전후로 비교할 수 있어야 다음 자동화를 설득할 근거가 생깁니다.
자동화하면 안 되는 일, 아직 이른 일
없애야 할 일. 마이클 해머는 1990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업무 재설계: 자동화하지 말고 없애라」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가 든 예가 포드의 대금 지급 부서입니다. 직원들은 구매 주문서, 입고 확인서, 거래처 송장 세 문서의 항목 14개를 맞춰 본 뒤 대금을 치렀고, 시간 대부분을 서로 맞지 않는 건을 조사하는 데 썼습니다. 포드는 대조 작업을 빠르게 하는 대신 송장을 없앴습니다. 구매 부서가 주문을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 넣고, 물건이 들어오면 주문 기록과 입고 기록의 부품 번호, 단위, 공급사 코드 세 가지만 컴퓨터가 맞춰 보게 바꾼 것입니다. 해머에 따르면 새 방식을 적용한 곳에서 인원이 75% 줄었고, 기존 방식대로 개선했다면 기대할 수 있던 감축 폭은 20%였습니다. 매주 만드는 보고서를 자동화하기 전에, 그 보고서를 누가 읽는지부터 물어보십시오.
방식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일. 담당자마다 다르게 하는 일을 자동화하면 한 사람의 방식만 기계에 굳고 나머지는 예외로 남습니다. 절차를 하나로 정하는 방법은 자동화보다 SOP가 먼저인 이유에서 다룹니다.
예외가 대부분인 일. 리산 베인브리지는 1983년 자동제어 학술지 『오토매티카』에 실은 「자동화의 아이러니」에서, 사람을 없애려는 설계자도 결국 자동화하는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일은 사람에게 남긴다고 지적했습니다. 남는 일은 가장 어렵고 드문 일들이고, 쓰지 않는 기술은 녹슬기 때문에 정작 그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이 더 서툴러져 있을 수 있습니다. 90%를 자동화했다면 나머지 10%를 누가, 어떤 문서를 보고 처리할지 정해 두고, 담당자가 가끔은 손으로 해 보게 해야 합니다.
관계와 판단이 본질인 일. 가격 협상, 클레임 사과, 채용 결정은 AI가 초안을 쓰거나 자료를 정리하는 데까지는 도울 수 있지만 결정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앞의 맥킨지 분석에서 자동화 가능성이 가장 낮게 나온 것도 이런 활동들이었습니다.
2주 기록으로 첫 후보 고르기
지금 바로 해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느낌이 아니라 기록으로 후보를 고르는 것이 핵심입니다.
- 2주 동안 한 줄씩 적습니다. 팀원 각자 반복 업무를 할 때마다 업무 이름, 걸린 시간, 자료를 어디서 받았는지, 중간에 판단이 필요했던 곳을 한 줄로 적습니다. 공유 시트 하나면 충분합니다.
- 3주 차 첫날 모아서 합칩니다. 같은 업무를 묶고, 사람 수와 횟수를 곱해 연간 시간을 냅니다. 위의 xkcd 식으로 5년 절감 시간과 1~2년 절감 시간을 같이 적습니다.
- 관문을 먼저, 점수는 나중에 봅니다. 없앨 일과 표준화가 먼저인 일을 따로 빼고, 남은 후보만 점수를 매겨 상위 세 개를 추립니다.
- 하나만 고릅니다. 상위 세 개 가운데 효과를 재기 쉬운 하나로 시작합니다. 2주 동안 적은 기록이 그대로 자동화 전 기준치가 됩니다.
- 한 달 돌려 보고 넓힙니다. 처음 한 달은 사람이 결과를 같이 확인하면서 예외가 어디서 나오는지 적어 둡니다. 그 목록이 다음 개선의 재료입니다.
자동화의 성패는 도구보다 고르는 단계에서 많이 갈립니다. 자주, 오래, 규칙대로 하는 일에서 시작하고, 없앨 일은 없애고, 되돌릴 수 없는 일에는 사람의 확인을 남기면 첫 자동화가 다음 자동화로 이어집니다.
고른 후보에 돈을 들일 가치가 있는지 따지는 방법은 자동화 ROI 계산법에서 이어집니다.
참고한 자료
- Is It Worth the Time? — xkcd, 2013
- Automation — xkcd, 2014
- Process Selection in RPA Projects – Towards a Quantifiable Method of Decision Making — Wanner 외, ICIS 2019 Proceedings, 2019
- Robotic Process Automation(RPA) 과제 선정을 위한 평가 요소 검증 연구 — 이상용·임춘성·이성웅, 차세대융합기술학회논문지, 2025
- Where machines could replace humans—and where they can’t (yet) — McKinsey Quarterly, 2016
- Reengineering Work: Don’t Automate, Obliterate — Michael Hammer, Harvard Business Review, 1990
- Ironies of Automation — Lisanne Bainbridge, Automatica,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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