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30명인 설비 부품 회사가 견적과 수주 관리를 엑셀에서 벗어나려 한다고 해 보겠습니다. 영업팀장은 월 구독료만 내면 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찾아 왔습니다. 생산팀장은 우리 회사 원가 계산 방식이 그 서비스에 맞지 않는다며 직접 만들자고 합니다. 대표 앞에는 1인당 월 몇만 원짜리 구독 견적서와 수천만 원짜리 개발 견적서가 함께 놓입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가격표만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이 글은 그 결정을 내리는 순서를 정리합니다.

선택지는 둘이 아니라 셋입니다

흔히 “살까, 만들까”로 묻지만 실제 선택지는 세 가지입니다. 이미 만들어진 서비스를 구독하는 기성 SaaS(Software as a Service, 인터넷으로 접속해 쓰는 구독형 소프트웨어), 에어테이블이나 노션처럼 표와 양식을 조립해 직접 꾸미는 노코드 도구, 그리고 개발자가 우리 회사 업무에 맞춰 새로 짜는 맞춤 개발입니다.

구분 기성 SaaS 노코드 도구 맞춤 개발
시작까지 걸리는 시간 며칠 몇 주 몇 달
초기 비용 낮음 낮음 높음
사람이 늘 때 비용 사용자 수만큼 늘어남 사용자 수만큼 늘어남 거의 그대로
우리 방식 반영 제품이 허락하는 만큼 도구의 한계 안에서 대부분 가능
고장 났을 때 공급사가 고침 만든 직원이 고침 개발사나 담당 개발자가 고침
그만둘 때 데이터 내보내기 기능에 달림 도구 안에 묶이기 쉬움 코드와 데이터가 회사 소유

표에서 보듯 어느 하나가 모든 줄에서 이기지는 않습니다. 기성 SaaS는 빨리 시작하는 대신 업무를 제품에 맞춰야 하고, 맞춤 개발은 우리 방식대로 만드는 대신 처음 돈과 시간이 많이 듭니다. 노코드는 그 중간이지만, 만든 직원이 퇴사하면 아무도 고칠 줄 모르는 표가 남는 일이 잦습니다.

사서 쓰는 쪽의 숨은 비용

구독료는 눈에 잘 보이지만 새는 돈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SaaS 관리 업체 자일로(Zylo)가 2026년 2월 갱신한 ’SaaS 관리 지수’에 따르면 평균적인 기업은 앱 305개를 쓰고 매달 9개씩 새로 들입니다. 결제한 라이선스 가운데 실제로 쓰이는 것은 54%뿐이었습니다. 자일로의 고객은 대부분 큰 회사라 숫자 자체를 중소기업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다만 “누가 결제했는지 모르는 구독”이 쌓이는 현상은 규모와 상관없이 나타납니다.

사용자 수 과금도 따져 봐야 합니다. 에어테이블의 요금표(2026년 10월 확인)는 Team 요금제가 편집 권한이 있는 사용자 1인당 월 20달러, Business 요금제가 월 45달러입니다. 둘 다 연 단위 결제 기준입니다. 처음 다섯 명이 쓸 때는 부담이 없지만, 영업과 생산과 물류가 모두 입력하게 되면 청구서도 사람 수만큼 커집니다.

더 큰 비용은 숫자로 청구되지 않습니다. 기성 제품이 우리 회사 견적 방식을 담지 못하면, 직원들은 제품에 기본 정보를 넣고 원가 계산은 엑셀에서 따로 합니다. 같은 숫자를 두 군데에 넣는 일, 월말마다 두 자료를 맞춰 보는 일이 남습니다. 엑셀·단톡방 업무의 숨은 비용에서 다룬 이중 입력이 도구 하나를 더 들인 뒤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사서 쓰는 쪽의 숨은 비용 관련 장면
AI 생성 이미지

만들기가 쉬워진 이유와 그 함정

최근 1~2년 사이 “만들자” 쪽에 무게가 실린 것은 AI 코딩 도구 때문입니다. 내부 업무툴 개발 플랫폼 리툴(Retool)이 2025년 말 고객과 개발자 817명을 조사해 2026년 2월 낸 보고서를 보면, 35%가 이미 SaaS 도구 하나 이상의 기능을 직접 만든 도구로 바꿨고 78%가 2026년에 더 많이 만들 계획이라고 답했습니다. 대체될 위험이 크다고 꼽힌 분야는 업무 흐름 자동화(35%), 사내 관리 도구(33%), BI(경영 지표 대시보드, 29%), 고객관리(CRM)와 양식 도구(25%) 순이었습니다.

맥킨지의 2026년 ‘AI 현황’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2%가 에이전트형 코딩 도구로 사내에서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소프트웨어 제품이나 기능 하나 이상을 사지 않기로 했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이는 사지 않기로 했다는 뜻이지, 대신 만든 도구가 1년 뒤에도 잘 돌아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리툴 역시 이런 흐름에서 이득을 보는 회사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합니다.

같은 리툴 보고서에는 경고도 담겨 있습니다. 응답자의 60%가 지난 1년 사이 IT 부서의 관리를 거치지 않고 도구를 만들어 배포했고, 26%는 유지보수 부담을, 21%는 이미 만든 자동화가 쉽게 깨지는 문제를 걸림돌로 꼽았습니다. AI가 만든 코드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쓴다는 응답은 8%, 배포 전에 꼼꼼히 시험한다는 응답은 44%였습니다. 만드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만든 것을 지키는 일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AI 도구 자체를 들이는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가 있습니다. 2025년 8월 포춘이 보도한 MIT NANDA 연구진의 보고서 「생성형 AI 격차」는 리더 150명 인터뷰, 직원 350명 설문, 공개된 AI 도입 사례 300건을 분석했습니다. 전문 업체에서 AI 도구를 사거나 협업한 경우 약 67%가 성공했지만, 사내에서 직접 만든 경우의 성공률은 그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직접 만드는 쪽이 늘 싸고 빠르다는 생각은 이 숫자 앞에서 다시 따져 봐야 합니다.

결정 전에 던질 다섯 가지 질문

어느 쪽을 고를지는 아래 다섯 질문에 답해 보면 대부분 정해집니다. 업무 하나마다 따로 답하는 것이 요령입니다. 회사 전체를 한 번에 “사자” 또는 “만들자”로 정하면 거의 틀립니다.

  1. 이 업무가 우리 회사의 경쟁력인가, 어느 회사나 같은 일인가. 회계 장부, 급여, 전자세금계산서는 법과 양식이 정해져 있어 회사마다 다를 이유가 적습니다. 이런 일은 사는 편이 낫습니다. 반대로 우리만의 원가 계산식, 거래처별 단가 규칙, 공정 순서처럼 고객이 우리를 고르는 이유가 담긴 업무라면 제품에 맞추는 순간 그 강점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2. 기성 제품이 지금 방식의 몇 퍼센트를 담는가. 무료 체험 기간에 실제 지난달 주문 20건을 넣어 보세요. 80~90%가 그대로 들어가면 나머지는 업무 방식을 바꾸는 편이 대개 쌉니다. 절반도 안 들어가면 엑셀 병행이 계속됩니다.
  3. 규칙이 얼마나 자주 바뀌는가. 단가 정책이나 승인 단계가 분기마다 바뀌는 회사라면 그때마다 공급사에 요청하고 기다려야 하는지, 우리가 직접 고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4. 다른 시스템과 얼마나 이어져야 하는가. 주문이 들어오면 재고를 빼고, 출고하면 송장을 만들고, 월말에 회계로 넘기는 흐름이라면 각 제품이 서로 연결되는지(API 제공 여부) 먼저 확인합니다. 연결이 안 되면 사람이 복사해 붙이는 일이 남습니다.
  5. 만든 뒤 누가 고치는가. 맞춤 개발이나 노코드를 고른다면 1년 뒤 오류가 났을 때 전화할 사람의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름을 댈 수 없다면 아직 만들 준비가 안 된 것입니다.

다섯 질문의 답이 “어느 회사나 같은 일, 제품이 대부분 담음, 규칙이 잘 안 바뀜”으로 모이면 사서 씁니다. “우리만의 방식, 제품이 절반도 못 담음, 자주 바뀜, 여러 시스템과 엮임”으로 모이고 고칠 사람이 정해져 있다면 만드는 쪽을 검토할 만합니다.

결정 전에 던질 다섯 가지 질문 관련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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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총비용으로 비교하는 법

가격 비교는 첫해가 아니라 5년으로 해야 합니다. 구독은 해마다 나가고, 맞춤 개발은 처음에 크게 나간 뒤 유지관리비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유지관리비는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가이드가 참고가 됩니다. 2021년 전자신문 보도 기준으로 협회 가이드는 상용 소프트웨어 유지관리 요율을 서비스 수준에 따라 초기 구매 금액의 연 12~20%로 제시하고, 오라클·SAP 같은 해외 업체는 20% 이상을 받습니다.

앞의 부품 회사에서 영업·생산 담당 15명이 견적·수주 도구를 쓴다고 가정하고 계산해 보겠습니다. 아래 금액은 계산 방법을 보여 주기 위해 잡은 숫자이니, 실제 견적서 금액으로 바꿔 넣으면 됩니다.

항목 A. 기성 SaaS B. 맞춤 개발
초기 비용 설정·데이터 이전 300만 원 개발비 3,000만 원
해마다 드는 비용 1인 월 4만 원 × 15명 = 연 720만 원 유지관리 연 15% = 450만 원(2년 차부터), 서버 연 120만 원
5년 합계 300만 + 720만 × 5 = 3,900만 원 3,000만 + 450만 × 4 + 120만 × 5 = 5,400만 원

비용만 보면 A가 5년 동안 1,500만 원, 1년에 300만 원꼴로 쌉니다. 여기서 끝내면 안 됩니다. A가 회사의 원가 계산식을 담지 못해서, 영업 담당 네 명이 하루 30분씩 엑셀로 원가를 따로 계산하고 제품에 옮겨 적는다고 해 보겠습니다. 연 250일 근무면 0.5시간 × 4명 × 250일 = 500시간입니다. 인건비를 포함한 시간당 비용을 2만 5,000원으로 잡으면 해마다 1,250만 원, 5년이면 6,250만 원이 사람 손으로 나갑니다.

B가 그 일을 정말 없앤다면 결론은 뒤집힙니다. 반대로 A가 원가 계산까지 담아 남는 수작업이 거의 없다면 A가 맞습니다. 결국 결정을 가르는 것은 구독료와 개발비의 차이가 아니라, 도입한 뒤에도 남는 수작업의 크기입니다. 사용자가 15명에서 40명으로 늘면 A의 구독료는 연 1,920만 원이 되지만 B의 비용은 거의 그대로라는 점도 함께 적어 둡니다. 남는 시간을 어떻게 재는지는 자동화 ROI 계산법에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섞어 씁니다

현실의 답은 대개 “둘 다”입니다. 회계·급여·전자결재처럼 표준화된 일은 검증된 제품을 사고, 견적 원가 계산이나 거래처별 출고 규칙처럼 회사마다 다른 일만 작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둘을 이어 같은 숫자를 두 번 넣지 않게 합니다. 처음부터 회사 전체 시스템을 새로 짜는 것보다 실패 위험이 작고, 필요할 때 한 부분씩 바꿀 수 있습니다.

노코드는 이 사이에서 시험장 역할을 하기 좋습니다. 새 업무 흐름을 몇 주 동안 노코드로 돌려 보면 어떤 칸이 꼭 필요하고 어떤 승인 단계가 실제로 쓰이는지 드러납니다. 그 흐름이 자리를 잡고 사용자가 늘어 구독료가 부담스러워질 때 맞춤 개발로 옮기면, 개발 범위가 분명해져 견적도 줄어듭니다.

어느 쪽을 고르든 먼저 해야 할 일은 같습니다. 지금 업무가 어떤 순서로 흘러가는지 적어 두는 것입니다. 순서가 정리되지 않은 업무는 사서 써도, 만들어도 같은 혼란을 새 도구로 옮길 뿐입니다. 이 정리 작업은 자동화보다 SOP가 먼저인 이유에서 다뤘습니다.

이 업무는 사는 게 맞는지 만드는 게 맞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지금 쓰는 엑셀과 업무 흐름을 기준으로 업무툴 개발 상담에서 함께 따져 볼 수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