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25명인 부품 유통 회사가 발주서 입력을 자동화하려고 외주 개발사를 불렀습니다. 개발자가 “발주서가 들어오면 어떤 순서로 처리하세요?“라고 묻자 담당자 세 명이 서로 다른 답을 합니다. 한 명은 재고부터 보고, 한 명은 단가부터 확인하고, 한 명은 급한 건을 먼저 입력한 뒤 나중에 맞춰 봅니다.
개발자는 세 방식 가운데 하나를 골라 프로그램에 굳혀야 하고, 나머지 두 사람의 방식은 예외 처리로 남습니다. 이 회사에 자동화 견적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발주 처리 방식을 하나로 정한 문서, 곧 SOP입니다. SOP(Standard Operating Procedure, 표준작업절차서)는 반복되는 일을 누가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오도록 순서와 기준을 적은 문서를 말합니다.
비효율을 자동화하면 비효율이 커진다
빌 게이츠가 했다고 널리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사업에 쓰이는 기술의 첫째 규칙은, 효율적인 운영에 자동화를 적용하면 효율이 커진다는 것이다. 둘째 규칙은, 비효율적인 운영에 자동화를 적용하면 비효율이 커진다는 것이다.” 디자인 원칙을 정리한 책 『Universal Principles of Design』은 이것을 ’게이츠의 자동화 규칙’이라는 항목으로 싣고, 자동화가 성공하려면 잘 설계된 업무 절차와 자동화에 맞는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앞의 회사에 대입하면 이렇습니다. “급한 건 먼저 입력하고 나중에 맞춰 본다”는 방식을 그대로 자동화하면, 틀린 단가가 사람 손으로 할 때보다 빠르게 ERP에 쌓입니다. 사람은 나중에 맞춰 보는 습관이라도 있었지만, 기계는 그런 단계가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문서에 없는 단계는 자동화 과정에서 조용히 사라집니다.
제조업은 이 순서를 일찍 배웠습니다. 도요타 생산방식을 만든 오노 다이이치는 “표준이 없는 곳에는 개선도 없다”는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방식이 적혀 있지 않으면, 무언가를 바꿨을 때 나아졌는지 나빠졌는지 비교할 기준이 없다는 뜻입니다. 도요타식 표준작업은 세 가지를 정합니다. 얼마나 빨리 해야 하는지(타이밍), 어떤 순서로 하는지, 작업 중에 붙잡고 있는 물건이나 정보를 얼마나 두는지입니다. 사무실로 옮기면 마감 시각, 처리 순서, 한 번에 붙잡고 있을 건수입니다.
표준은 한 번 정하면 끝나는 규칙이 아닙니다. 미국의 한 제조사에서 린(lean, 도요타 생산방식에서 나온 낭비 줄이기 경영법)을 가르치는 코치는 표준작업을 “어떤 일을 하는 방법 가운데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안전하고, 품질이 좋고, 효율적인 방법을 간단히 적은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개선한 내용을 새 표준으로 적지 않으면 금세 예전 방식으로 돌아간다고 경고합니다. SOP는 개선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입니다.
담당자는 자기가 아는 것을 다 말하지 못한다
SOP를 쓰자고 하면 흔히 담당자에게 “아는 걸 다 적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방법은 대개 실패합니다.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1966년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썼습니다.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중요한 요령이 몸에 배어 있어서, 본인도 그것이 요령인 줄 모릅니다.
일본의 경영학자 노나카 이쿠지로가 1991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소개한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의 제빵기 개발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1985년 개발팀은 반죽을 제대로 치대는 기계를 만들지 못해 애를 먹었습니다. 겉은 타고 속은 덜 익은 빵이 나왔고, 기계로 치댄 반죽과 제빵사가 치댄 반죽을 엑스레이로 비교해 봐도 쓸 만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다나카 이쿠코가 오사카에서 빵이 가장 맛있다는 오사카국제호텔의 제빵장을 찾아가 직접 배웠습니다. 그는 제빵장이 반죽을 독특하게 늘인다는 점을 알아챘고, 엔지니어들과 1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기계 안에 특수한 돌기를 넣는 설계로 그 동작을 재현했습니다. 이 제빵기는 출시 첫해 신규 주방 가전 판매 기록을 세웠습니다.
노나카는 제빵장의 손기술처럼 말로 옮기기 어려운 지식을 ‘암묵지’, 제품 사양서처럼 적어서 나눌 수 있는 지식을 ’형식지’라고 불렀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배울 점은 암묵지가 인터뷰로는 잘 나오지 않고, 옆에서 보고 따라 해 볼 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회사 업무도 같습니다. 경리 담당자에게 절차를 물으면 “계산서 발행하고 보내요”라고 답하지만, 옆에서 보면 특정 거래처에는 발행 전에 꼭 전화를 겁니다. 이유를 물어야 “예전에 금액이 틀려 반려된 적이 있어서”라는 답이 나옵니다. 그 전화 한 통과 이유가 SOP에 들어가야 할 내용입니다.
이 문제는 자동화와 곧바로 이어집니다. MIT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는 2014년 논문에서 컴퓨터가 가장 잘 넘겨받은 일은 “명시적이고 코드로 옮길 수 있는 절차를 따르는 일”이었다고 정리했습니다. 생성형 AI는 수많은 사례에서 패턴을 배우는 방식으로 이 한계를 일부 넘어섰지만, 우리 회사 거래처에 전화를 먼저 걸어야 한다는 사실은 알려 주지 않으면 여전히 모릅니다.
잘 쓴 SOP의 여섯 가지 조건
SOP 작성법은 품질 관리가 엄격한 분야에서 오래 다듬어졌습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07년 SOP 작성 지침(QA/G-6)을 냈고, 공장 감독자 훈련 프로그램 TWI(Training Within Industry)의 ‘작업 지도’ 방법은 2차 대전 시기부터 지금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둘을 중소기업 사무 업무에 맞게 추리면 여섯 가지 조건이 남습니다.
| 조건 | 무슨 뜻인가 | 확인하는 법 |
|---|---|---|
| 짧고 단계별로 | 한 단계에 한 동작, 동사로 시작, 모호한 말 없이 | ‘적절히’, ’알아서’가 있으면 고친다 |
|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쓴다 | 팀장이 아니라 실제 담당자가 쓰고 팀장이 검토 | 작성자 이름이 담당자인가 |
| 처음 하는 사람이 혼자 따라 할 수 있다 | 기본 지식만 있으면 감독 없이 같은 결과 | 신입에게 시켜 본다 |
| 요령과 이유가 적혀 있다 | 성패를 가르는 포인트와 그 이유 | 단계마다 “왜?“에 답이 있는가 |
| 예외와 갈림길이 있다 | 자료가 빠졌을 때, 금액이 다를 때 할 일 | “이럴 땐 어떻게?“를 세 번 물어본다 |
| 주인과 개정일이 있다 | 담당자, 개정 번호와 날짜, 점검 주기 | 마지막 개정일이 언제인가 |
EPA 지침은 SOP를 “간결하고, 단계별이며, 읽기 쉬운 형식”으로 쓰라고 하면서, 작성자는 그 일을 실제로 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여럿이 함께 쓰면 사용자들이 받아들이기도 쉽다고 말합니다. 자세함의 기준도 분명합니다. 경험은 적지만 기본 이해가 있는 사람이 감독 없이 그 절차를 재현할 수 있을 만큼 적으라는 것입니다. 또 절차가 바뀔 때마다 SOP를 고치고, 1~2년마다 정기적으로 점검해 더 이상 쓰지 않는 절차는 치우라고 권합니다.
네 번째 조건, 요령과 이유는 TWI에서 빌려 왔습니다. TWI는 일을 ‘주요 단계’, ‘핵심 포인트’, ‘그 이유’ 세 칸으로 쪼개 적게 합니다. 핵심 포인트는 일의 성패를 가르는 것,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일을 쉽게 만드는 요령이나 특별한 타이밍입니다. 앞에서 말한 암묵지가 들어갈 자리가 바로 이 칸입니다. TWI의 표어는 이렇습니다. “배우는 사람이 배우지 못했다면,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SOP도 같습니다. 읽은 사람이 못 따라 한다면 문서를 고쳐야 합니다.
문서의 품질이 AI 활용의 품질을 정한다
SOP가 요즘 다시 중요해진 이유는 AI입니다. AI에게 일을 맡기려면 무엇을 어떤 순서로, 어떤 기준으로 할지 알려 줘야 하는데, 그 내용이 곧 SOP입니다.
오픈AI가 2025년 낸 「에이전트 구축 실무 가이드」는 AI 에이전트(스스로 여러 단계를 밟아 일을 처리하는 AI)에게 줄 지시문을 만들 때 “기존의 업무 절차서, 고객 응대 스크립트, 정책 문서를 활용하라”고 권합니다. 이어서 긴 자료를 작고 분명한 단계로 쪼개고, 단계마다 구체적인 행동이나 결과물을 정하고, 정보가 빠졌을 때처럼 흔한 예외를 갈림길로 적어 두라고 합니다. 앞의 여섯 가지 조건과 거의 그대로 겹칩니다.
앤트로픽의 Claude 사용 안내서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Claude를 “당신 회사의 규범과 업무 흐름을 모르는, 똑똑하지만 새로 온 직원”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안내서가 제시하는 확인법은 지시문을 맥락을 모르는 동료에게 보여 주고 따라 해 보게 하는 것입니다. 동료가 헷갈려하면 Claude도 헷갈린다고 안내서는 말합니다. EPA가 말한 ’경험이 적은 사람이 혼자 재현할 수 있는가’와 같은 시험입니다. 잘 쓴 SOP에는 독자가 셋 있는 셈입니다. 신입 직원, 자동화를 만드는 개발자, 그리고 AI입니다.
다만 문서만 있으면 AI가 알아서 한다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아마존 연구진이 2025년 6월 공개한 SOP-Bench는 10개 산업 분야의 현장 절차를 본떠 만든 SOP와 과제 1,800여 개로 AI 에이전트를 시험했는데, 두 가지 에이전트 구조의 평균 과제 성공률은 27%와 48%에 그쳤습니다(첫 공개본 기준).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도구를 쥐여 주면 거의 매번 엇나간 도구를 골랐습니다. 모델은 빠르게 나아지고 있지만, 길고 복잡한 절차일수록 AI가 틀리기 쉽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SOP를 짧은 단위로 나누고, 예외와 승인은 사람이 맡도록 적어 두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안전한 설계입니다.
SOP를 쓰는 다섯 단계와 예시
- 하나를 고릅니다. 자주 하고, 여러 사람이 하고, 사람마다 방식이 다른 일이 첫 후보입니다. 후보 고르는 법은 무엇부터 자동화할까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 옆에서 봅니다. 그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실제로 할 때 화면을 녹화하거나 옆에서 받아 적습니다. 단계마다 “지금 왜 그걸 먼저 보셨어요?“라고 묻고, 그 답을 핵심 포인트와 이유 칸에 적습니다.
- 한 장으로 씁니다. 목적, 시작 조건, 단계(핵심 포인트와 이유 포함), 예외, 완료 기준, 담당자와 개정일을 넣습니다. 한 장을 넘으면 절차를 둘로 나눌 때가 된 것입니다.
- 모르는 사람에게 시켜 봅니다. 입사 석 달이 안 된 직원이나 다른 팀 사람이 SOP만 보고 해 보게 합니다. 멈추거나 질문한 곳이 고칠 곳입니다. 고객명과 단가를 지운 초안을 ChatGPT나 Claude에 붙여 넣고 “처음 하는 사람이 헷갈릴 곳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좋은 점검입니다.
- 바뀌면 바로 고칩니다. 절차가 바뀐 날 SOP도 고치고 개정일을 적습니다. EPA는 1~2년마다 점검하라고 하지만, 거래처와 품목이 자주 바뀌는 작은 회사라면 반년에 한 번 훑어보는 편이 낫습니다.
앞의 부품 유통 회사가 쓴다면 이런 모습입니다.
SOP-영업-003 거래처 발주서 접수와 ERP 입력 (개정 2026-09-29, 담당 영업관리팀)
- 목적: 들어온 발주를 빠짐없이, 계약 단가로, 제때 출고 목록에 올린다.
- 시작 조건: 발주 전용 메일로 발주서가 들어올 때. 카톡이나 전화로 받은 발주는 접수 대장에 ’구두 접수’로 적고, 발주 메일로 다시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 순서 | 할 일 | 핵심 포인트 | 이유 |
|---|---|---|---|
| 1 | 접수 대장에 발주를 적는다 | 받은 시각을 분 단위까지 | 오후 2시 이후 접수분은 다음 날 출고라서 시각이 기준이 된다 |
| 2 | ERP에서 거래처를 찾는다 | 상호가 아니라 거래처 코드로 검색 | 이름이 같은 지점이 여러 곳 있다 |
| 3 | 품목과 수량을 입력한다 | 박스 단위인지 낱개 단위인지 확인 | 거래처마다 발주 단위가 다르다 |
| 4 | 단가를 확인한다 | 계약 단가표와 다르면 입력을 멈추고 팀장에게 묻는다 | 할인 예외는 팀장만 승인한다 |
| 5 | 재고를 확인한다 | 모자라면 대체품보다 분할 출고를 먼저 제안 | 대체품은 반품되는 경우가 많다(거래처별 예외 목록 참조) |
| 6 | 출고 목록에 올리고 대장에 완료 표시 | 보류하면 사유를 한 줄 적는다 | 다음 날 다른 담당자가 이어받을 수 있다 |
- 예외: 품번이 없는 발주서는 거래처에 확인하기 전까지 입력하지 않는다. 오후 2시 이후 당일 출고 요청은 팀장 승인을 받는다.
- 완료 기준: 접수 대장의 모든 줄이 ‘완료’ 또는 ’보류(사유)’로 끝나 있다.
이 한 장이 있으면 개발자는 1~3단계와 6단계를 먼저 자동화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보고, 4단계의 “멈추고 묻는다”를 사람 승인으로 남기는 설계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AI에게 발주서 검토를 맡길 때도 이 표가 그대로 지시문이 됩니다. 무엇보다 담당자가 휴가를 가도 다른 사람이 같은 순서로 일할 수 있습니다.
자동화와 AI는 이미 있는 절차를 빠르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절차가 사람마다 다르면 빠르게 만들 대상도 정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순서는 늘 같습니다. 옆에서 보고, 한 장으로 적고, 모르는 사람에게 시켜 보고, 그다음에 자동화합니다.
이렇게 쌓인 매뉴얼과 규정을 AI가 찾아 답하게 하는 방법은 사내 규정·매뉴얼에 묻고 답하는 AI에서 이어집니다.
참고한 자료
- Gates’ Rule of Automation (Universal Principles of Design, 3판) — O’Reilly Learning(전자책), 2023
- Where There is No Standard, There Can Be No Kaizen — Reliable Plant, 2008
- 5 Missing Pieces in Your Standardized Work (Part 1 of 3) — Lean Enterprise Institute, 2009
- The Knowledge-Creating Company — Ikujiro Nonaka, Harvard Business Review, 1991
- Polanyi’s Paradox and the Shape of Employment Growth — David Autor, NBER, 2014
- Guidance for Preparing Standard Operating Procedures (EPA QA/G-6) — 미국 환경보호청, 2007
- TWI Job Instruction Card — Lean Enterprise Institute, 2021
- A practical guide to building agents — OpenAI, 2025
- Prompting best practices — Anthropic, 2026년 확인
- SOP-Bench: Complex Industrial SOPs for Evaluating LLM Agents — Amazon 연구진, arXiv,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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