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30명인 식품 유통 회사가 있다고 해 보겠습니다. 월요일 아침, 11년째 거래처 발주를 맡아 온 영업관리 과장이 한 달 뒤 그만두겠다고 말합니다. 어느 마트는 금요일 오후에 들어온 주문을 월요일 첫 배차로 보내야 하고, 어느 식당 체인은 세금계산서를 말일이 아니라 20일에 끊어 달라고 합니다. 이런 예외가 수십 개인데, 적혀 있는 곳은 과장의 머릿속과 휴대폰 메모장뿐입니다.

인수인계 기간은 2주로 잡혔습니다. 11년 동안 쌓인 예외를 2주 만에 말로 다 옮기기는 어렵고, 빠진 부분은 다음 달 클레임으로 돌아옵니다. 그 클레임을 수습하는 사람은 대개 사장입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회사에 필요한 것이 시스템화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스템화는 거창한 전산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누가 하든 같은 결과가 나오도록 일의 순서와 기준을 사람이 아닌 회사에 남겨 두는 일입니다.

사람에게 기대는 회사에 생기는 두 가지 병목

사람에게 기대는 회사는 두 군데서 막힙니다. 하나는 특정 담당자이고, 다른 하나는 사장입니다.

담당자 쪽부터 보겠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25년 9월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대기업 정규직의 46.8%에 그쳤습니다. 사람이 그만큼 자주 바뀐다는 뜻입니다. 빈자리를 채우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메인비즈협회가 2026년 4월 회원사 360곳을 조사했더니 68.1%가 늘 인력이 모자란다고 답했고, 인력 공백이 3개월 넘게 이어진다는 곳이 42.9%였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정년 연장에 찬성한 기업들이 꼽은 첫째 이유는 ‘숙련 인력의 기술과 노하우 유지’(78.7%)였습니다. 노하우가 문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묶여 있다는 사실을 회사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떠나면 노하우도 같이 떠납니다.

사장 쪽 병목은 더 조용히 쌓입니다. 견적 단가를 정하는 사람, 할인 예외를 허락하는 사람, 거래처와 얽힌 사정을 아는 사람이 모두 사장이면, 사장이 일주일만 자리를 비워도 결재와 출고가 밀립니다. 이 문제는 회사를 물려줄 때 가장 크게 드러납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 가운데 대표가 60세 이상인 곳의 비중은 2012년 14.1%에서 2022년 33.5%로 늘었습니다. 2025년 12월 정부가 인용한 자본시장연구원 추정(2022년 기준)으로는 경영자가 60세 이상인 중소기업 약 236만 곳 가운데 28.6%인 67만 5천 곳이 후계자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운영 방식이 사장 머릿속에만 있는 회사는 물려받기도, 사들이기도 어렵습니다. 미국 국세청은 1959년에 낸 비상장 주식 가치평가 지침(Revenue Ruling 59-60)에 이미 이 점을 적어 두었습니다. 이른바 ‘1인 경영’ 회사는 경영자를 잃으면 주식 가치가 떨어질 수 있고, “경영을 이어받을 훈련된 인력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는 내용입니다. 60년 넘게 가치평가 실무에서 쓰인 기준이, 사람에게 기대는 회사는 그만큼 덜 가치 있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사업의 철학』이 짚은 기술자의 함정

이 문제를 가장 널리 알린 책은 마이클 거버의 『사업의 철학』(원제 The E-Myth Revisited, 1995)입니다. 제목의 ’E-신화’는 작은 회사를 세우는 사람이 대개 기업가가 아니라 기술자라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빵을 잘 굽는 사람이 빵집을 열고, 설계를 잘하는 사람이 설계 사무소를 엽니다. 거버는 이들이 빠지는 착각을 ’치명적 가정’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일을 잘 알면 그 일을 하는 사업도 잘 안다고 믿는 것입니다.

거버는 사장 한 사람 안에 세 사람이 산다고 봅니다. 미래를 그리는 기업가, 질서를 세우는 관리자, 손으로 일하는 기술자입니다. 그가 본 전형적인 소기업 사장은 기업가 10%, 관리자 20%, 기술자 70%였습니다. 그래서 사장은 하루 종일 가장 급한 실무를 직접 처리하고, 회사가 사장 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일은 늘 뒤로 밀립니다. 책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은 이것입니다. “사업이 당신에게 의존한다면, 당신은 사업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가진 것이다.”

한국 회사로 옮겨 보면 익숙한 장면입니다. 인테리어 회사 대표가 현장 실측도, 견적도, 자재 발주도, 하자 보수 일정도 직접 챙깁니다. 일은 잘 돌아가지만 대표의 하루가 곧 회사의 처리 능력입니다. 매출을 늘리려면 대표가 더 오래 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의 철학』이 짚은 기술자의 함정 관련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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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거버의 책은 연구서가 아닙니다. 컨설턴트의 경험을 파이 가게 주인 ’사라’의 이야기로 풀어낸 우화에 가깝고, 10·20·70이라는 비율도 측정값이라기보다 진단을 돕는 비유로 읽는 편이 맞습니다. 그래도 이 책이 30년 넘게 읽히는 이유는, 많은 사장이 그 이야기 속에서 자기 하루를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맥도날드가 판 것은 햄버거가 아니었다

거버가 모범으로 든 회사는 맥도날드입니다. 맥도날드 형제는 1940년 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에서 드라이브인 식당을 열었고, 1948년 메뉴를 줄이고 일하는 방식을 통째로 다시 짰습니다. 맥도날드 공식 사이트는 이때 들인 방식을 ’스피디 서비스 시스템(Speedee Service System)’이라고 소개합니다. 햄버거와 셰이크, 감자튀김 정도로 메뉴를 좁히고 15센트짜리 햄버거를 빠르게 내놓는 방식이었습니다. 1954년, 밀크셰이크 기계를 팔러 다니던 레이 크록이 이 가게를 보고 운영 방식에 반해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듭니다.

거버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크록이 판 상품은 햄버거가 아니라 맥도날드라는 사업 그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가맹점주가 누구든 같은 결과가 나와야 팔리는 상품이므로, 크록은 점주의 재능에 기대지 않는 사업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거버의 표현으로는 “사람에게 의존하는 사업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존하는 사업”입니다. 거버는 이것을 ’프랜차이즈 원형’이라 부르고, 가맹점을 낼 생각이 없는 회사도 자기 회사를 그렇게 설계하라고 권합니다.

그가 제시한 원형의 규칙 가운데 두 가지가 특히 자주 오해받습니다. 하나는 “가능한 한 낮은 숙련도의 사람이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규칙입니다. 사람을 싸게 쓰라는 말로 들리지만 거버의 설명은 다릅니다. 법률 사무소라면 당연히 변호사가 있어야 하지만, 천재 변호사가 아니라 좋은 변호사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체계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은 운영 매뉴얼로 문서화한다”는 규칙입니다. 앞의 규칙은 뒤의 규칙이 있어야 지킬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에 옮기면 이런 변화입니다. “견적은 사장님만 낼 수 있다”를 “단가표와 할인 기준, 사장 승인이 필요한 예외 목록이 있으면 입사 3개월 차도 견적 초안을 쓸 수 있다”로 바꾸는 것입니다. 사장은 예외만 보면 됩니다.

체크리스트 한 장이 전문가를 지키는 방식

시스템화에 대한 흔한 반론은 “우리 일은 숙련이 필요해서 매뉴얼로는 안 된다”입니다. 이 반론에 대한 좋은 답이 비행기 조종석에서 나왔습니다.

1935년 10월 30일,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라이트 비행장에서 보잉의 신형 폭격기 ’모델 299’가 시험 비행에 나섰습니다. 비행기는 이륙 직후 실속해 추락했고, 조종사 플로이어 힐 소령을 포함해 두 명이 숨졌습니다. 조사해 보니 기체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육군 항공대의 비행시험 책임자였던 힐 소령이 꼬리 조종면을 고정하는 잠금장치를 풀지 않고 이륙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한 신문은 이 비행기를 두고 “한 사람이 몰기에는 너무 많은 비행기”라고 썼습니다.

시험 조종사들이 내놓은 해법은 교육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힐 소령보다 경험 많은 조종사를 구하기는 어려웠으니까요. 그들은 이륙, 비행, 착륙, 지상 이동 단계마다 확인할 항목을 색인 카드 한 장에 적었습니다. 브레이크가 풀렸는지, 계기가 맞춰졌는지, 문이 닫혔는지처럼 조종사라면 누구나 아는 항목이었습니다. 외과의사 아툴 가완디는 『체크리스트 매니페스토』(2009)에서, 이 체크리스트를 쓴 뒤 이 기종이 사고 없이 180만 마일을 날았고 육군이 1만 3천 대 가까이 주문했다고 적었습니다. 이 비행기가 2차 대전의 B-17입니다.

가완디는 실패를 두 종류로 나눕니다. 몰라서 틀리는 ’무지’와, 알면서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미숙’입니다. 그의 진단은 오늘날 많은 분야에서 무지보다 미숙이 더 큰 문제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아는 것의 양과 복잡성이, 개인이 그것을 정확하고 안전하게 실행하는 능력을 넘어섰다”고 썼습니다. 중소기업 실무에 대입하면, 거래처 조건과 품목과 예외가 늘어날수록 한 사람의 기억으로 버티기 어려워진다는 말입니다.

이 주장은 병원에서 검증됐습니다. 가완디가 참여한 연구팀은 2007~2008년 토론토, 뉴델리, 런던, 시애틀 등 8개 도시의 병원 8곳에 19개 항목짜리 WHO 수술 안전 체크리스트를 도입했습니다. 도입 전 환자 3,733명과 도입 후 3,955명을 비교했더니 사망률은 1.5%에서 0.8%로, 합병증 발생률은 11.0%에서 7.0%로 내려갔습니다(뉴잉글랜드 의학저널, 2009). 도입 전후를 비교한 연구라 체크리스트 한 장만의 효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숙련된 외과의들이 일하는 수술실에서도 차이가 났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체크리스트 한 장이 전문가를 지키는 방식 관련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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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리스트가 한 일은 전문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억에 맡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종이에 맡겨서, 판단이 필요한 곳에 주의를 쓰게 한 것입니다. 회사의 시스템도 같습니다. 거래처별 마감 시간을 외우는 데 들이던 노력을 까다로운 거래처와 협상하는 데 쓰게 하는 것이 시스템화의 목적입니다.

시스템화는 자동화와 AI의 출발점이다

시스템화가 지금 다시 중요해진 이유는 자동화와 AI입니다. 프로그램이든 AI든 기계가 넘겨받을 수 있는 일은 순서와 기준이 어딘가에 적혀 있는 일입니다. 과장 머릿속에만 있는 “금요일 오후 주문은 월요일 첫 배차” 같은 규칙은 외주 개발자도, 챗GPT도 알 방법이 없습니다.

생성형 AI가 아무리 좋아져도 이 사정은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AI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지식은 많이 알지만, 우리 회사의 단가 예외나 거래처 사정은 알려 주지 않으면 모릅니다. 거꾸로 업무 순서와 기준을 문서로 정리해 둔 회사는 그 문서를 그대로 자동화 설계의 출발점으로, AI에게 줄 지시문으로 쓸 수 있습니다. 같은 도구를 들이고도 회사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사람이 하던 일을 문서와 체크리스트로 옮기고, 그중 자주 반복되고 규칙이 분명한 부분을 도구에 맡기고, 판단이 섞인 부분에 AI를 붙입니다. 이 순서를 건너뛰고 도구부터 사면 정리되지 않은 업무를 더 빠르게 반복하게 됩니다.

우리 회사 점검: 10문항과 첫 세 걸음

아래 열 문항 가운데 ’그렇다’가 몇 개인지 세어 보십시오. 사장 혼자 답하는 것보다 팀장 두세 명이 따로 답한 뒤 비교하면 더 정확합니다. 사장은 업무가 멈춘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팀장은 매주 멈춘다고 답하는 항목이 가장 먼저 손볼 곳입니다.

번호 질문
1 대표가 2주 자리를 비우면 견적, 결재, 출고 중 하나라도 멈춘다
2 한 사람만 처리할 줄 아는 업무가 세 개 이상 있다
3 그 업무들의 순서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4 거래처별 예외(단가, 마감일, 배송 조건)가 담당자 머릿속이나 개인 메모에만 있다
5 신입이 첫 달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이건 누구한테 물어봐요?“다
6 같은 질문이 단톡방에 매주 되풀이된다
7 같은 업무를 사람마다 다른 순서와 다른 양식으로 처리한다
8 실수가 나면 원인보다 “누가 그랬는지”를 먼저 찾는다
9 퇴사자 인수인계가 “2주 동안 옆에서 보기”로 끝난다
10 대표가 휴가 중에도 하루에 몇 번씩 업무 전화를 받는다

02개면 기본 틀은 갖춘 편입니다. 35개면 핵심 업무 몇 개가 특정인에게 묶여 있어서, 그 사람이 빠지는 날 문제가 바로 드러납니다. 6개 이상이면 사람이 곧 시스템인 상태입니다. 이런 회사는 커질수록 사장의 하루가 길어집니다.

점수가 어떻든 시작은 작게 하는 편이 좋습니다.

  1. 업무 지도를 그립니다. 매주 또는 매달 반복되는 일을 한 줄씩 적고, 옆에 담당자, 대신할 수 있는 사람, 적어 둔 문서가 있는지를 표시합니다. 팀장들과 두 시간이면 초안이 나옵니다.
  2. ’대신할 사람 없음, 문서 없음’인 일부터 한 장으로 옮깁니다. 두꺼운 매뉴얼이 아니라 B-17 조종사들의 색인 카드처럼 순서와 놓치기 쉬운 항목만 적은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담당자에게 설명을 듣기보다, 실제로 일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적어야 빠지는 단계가 적습니다.
  3. 휴가 테스트를 합니다. 회사 매각 가치를 다루는 Built to Sell 웹사이트는 저녁과 주말에 연락을 끊는 것부터 시작해 평일 하루, 그다음 일주일로 늘려 보라고 권합니다. 대표가 없는 동안 멈춘 곳이 다음에 문서로 옮길 곳입니다.

시스템화를 사람을 믿지 못해서 하는 일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반대에 가깝습니다. 체크리스트를 쓴 B-17 조종사들이 서툰 조종사가 아니었듯, 일의 순서를 회사에 남겨 두면 사람은 기억 대신 판단에 힘을 쓸 수 있습니다. 담당자가 떠나도, 사장이 한 달을 쉬어도 굴러가는 회사는 오늘 적는 한 장에서 시작합니다.

적어 둔 문서를 다듬어 자동화까지 이어 가는 방법은 자동화보다 SOP가 먼저인 이유에서 다룹니다.

참고한 자료